요즘 젊은 20대 친구들은 연애를 포기하고 있다는 답변을 많이 한다고 해요.
그러한 이유 중에는 '적당한 상대를 만나지 못해서'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죠.
제가 결혼 생활을 행복하게 하는 것을 알고는
저에게 간혹 연애 관련 질문을 주시는 분들이 있으신데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세요.
"좋은 남자 어디에서 만나야 할지 모르겠어요."
"좋은 사람은 어디에 있나요?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요?"
"저는 눈이 높아서 사람을 잘 못 만나겠어요."
그런데 질문의 순서가 조금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먼저 좋은 사람의 기준이 무엇일까요?
(남자이든 여자이든) 외모가 아름답고, 능력 있고, 현명하고, 가정에 충실하고, 성실하고, 미래에 대한 명확한 비전이 있고, 항상 노력하며, 예의 바르고, 교양 있고, 친절하고, 나쁜 말을 하지 않고, 건강을 잘 챙기며, 술과 담배를 하지 않고, 유흥을 즐기지 않고, 독서 등의 건전한 취미를 즐기며, 경제관념까지 갖추었으며, 가정은 화목하고, 침착하며, 나만 바라보는 한결같은 사람이고, 미래 배우자가 될 집안의 부모님도 인자하시고....
이런 조건을 바라시는 것은 아니겠죠?
우리가 인정해야 할 부분은 바로
절대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것 이예요.
우리는 TV와 유튜브 등 여러 매체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이쁘고 멋지고 잘생긴 사람들을 쉽게 접할 수 있어요.
그래서 더 기준점이 높아졌을 수도 있고 여러 SNS 등에서 타인의 이상적인 삶의 한 조각들을 엿보면서 나도 무결하게 이상적인 연애와 결혼을 꿈꾸는지도 몰라요.
하지만 찰리 채플린이 남긴 명언처럼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란 점도 알아야 하죠!
연애와 결혼이 비극이란 말은 절대 아니에요.
다만, 내가 어떻게 연애와 결혼을 대하느냐에 따라서 비극이 될 수 있다는 말이죠.
연애와 결혼은 결국 두 사람이 만나서 하는 일이잖아요?
다른 삶과 생각,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때로는 싸워가며 맞춰가는 과정임을 먼저 인식해야 해요.
저 역시 한때 지금의 아내와 다투고 오해하고 또 싸우고 화해하고 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 양보하며 살아가고 있는걸요.
물론 저 뿐만 아니라 아내도 많은 양보를 해주었기 때문에 지금은 매일 웃으며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이죠.
(이제는 안 싸운지 상당히 오래되었네요 ^^)
나는 양보를 10 하고 상대에게 90의 양보를 요구한다면 그것은 연애가 아니에요.
만일 그렇게 내가 편한 만남을 가지고 싶었는데 상대방이 90을 맞춰주지 못한다고 '너는 내가 생각한 이상적인 사람이 아니야!'라고 한다면 그 누구와도 건강한 만남을 할 수 없죠.
객관적으로 나도 50을 양보하고 맞추려고 노력했는지를 생각해 봐야해요.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의 문제죠)
우리가 이상적인 사람을 공장에서 맞춤 주문해서 제작해서 만나는 것이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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